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가 기록된 말씀에 포함된 진리를 떠나 변절되었다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쓰여진 말씀,"(기록된 말씀) "성경 그리고 오직 성경," "주께서 가라사대," 이러한 말들이야말로 그들의 변함없는 좌우명이었으며, "기록된 성경 말씀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을 것을 호소한", 이것은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티즘가 선언한 강령이었다.
오직 성경 또는 성경과 전통?
카톨릭 교회의 입장과 주장은, "성경과 전통", "교부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교회에 의해 내려진 해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트렌트 공회의 주된 이슈였고, 공의회의 주목적은 개혁자들에 의해 유럽에서 제기되었던 이 특별한 문제를 토의하는 것이었다. 이 회의에 의해 고려된 신앙에 대한 첫 문제도 이 이슈와 관련되어 있었다.
레지오 대주교(레기오의 대주교)
마침내, 장기간에 걸친 철저한 고뇌 끝에, 레기오의 대주교는 그 회의 내에서 ‘오직 성경’의 입장을 고수하던 그 파에게 “프로테스탄트들이 기록된 말씀에만 의존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경만을 믿음의 표준으로 고백한다. 그들은 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떠나 전통을 따름으로 배도했다는 것으로 그들의 반란을 정당화한다. 이제 프로테스탄트들이 쓰여진 말씀에만 의존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신앙의 표준으로 성경만 받든다는 그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증거: 기록된 말씀은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준수할 것을 명확히 명령한다. 그들은 일곱째 날을 지키지 않고 거부한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신앙의 표준으로 성경만을 붙잡는다면, 성경 전반에 명령된 일곱째 날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쓰여진 말씀에 명령된 안식일 준수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전통으로 일요일 준수를 채택하여 지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경만을 표준으로 삼는다'에 대한 주장은 성립이 될 수 없고, '성경과 전통'의 교리는 필수적이며, 프로테스탄트들 자신의 판단에 의해 확고부동하게 성립된다.
이것을 논박할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프로테스탄트들의 신앙진술서인 1530년 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주일 준수”가 “교회”에 의해 정해졌다는 것을 명확히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주장은 오직 영감에 의한 것으로 대대적 환영을 받았다. 결국, "오직 성경" 지지파는 승복했고, 이 공의회는 즉시 만장일치로 프로테스탄티즘과 전체 종교개혁운동을 카톨릭교회의 성회에 권위에 대항하는 부당한 반역으로 규탄하고 1546년 4월 8일 두 개의 칙령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는데, 첫 번째는 ‘성경과 전통’을 받아들여 동등하게 받들어야 하고, 제2경전에 속하는[출처가 불분명한](외경) 책들을 정경의 일부로 규정했다.
모순은 패배를 가져온다
이렇게 프로테스탄 측의 행위가 그들의 신앙고백에 모순된 까닭에 카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트 사상과 종교개혁 운동 전반을 단순히 교회의 권위에 항거하는 이거적 야망에 의한 반란으로 정죄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노심초사하며 찻던 좋은 구실이었다. 그리고 이 중요한 논쟁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 모순의 열쇠가 된 주요 결정적 표현은 성경에 명령된 하나님의 제칠일 안식일을 거절하고 가톨릭교회가 명령한 일요일을 채택하여 준수한 것에 있었다.
- 로마의 도전, 25~2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