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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격동

 시편 78:41

 여러분 중에 미국 해군성에 전화를 걸어 모든 적 잠수함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 남자에 대해 들어보신 분이 계신가요? 장군들이 그의 발견 사실에 관심을 보이자, 그 남자는 바닷물을 끓여 모든 잠수함이 물 위로 솟아오르면 그것들을 파괴하는 계획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어요. 그들이 그 남자에게 바닷물을 끓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자, 그는 “자, 제가 계획을 제공했으니 자세한 사항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그 남자가 괴짜이거나 장난전화나 거는 못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터무니없는 제안에 모두 웃고 말았어요.

 하지만 저는 오늘 거의 이 바닷물을 끓이는 아이디어만큼이나 믿을 수 없게 들리는 성경의 구절에 대해 말씀 드리려 하는데요.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우리 눈이 우리를 속이는 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야 했지요. 이 구절은 분명히 모든 성경절 중에서 가장 담대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여기 있네요. 시편 78편 41장입니다.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기괴할 정도의 대담함이 묻어 있지요. 실제로 이 구절은 미약한 인간 존재가 위대한 우주의 하나님을 격동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일견할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분명 있어요.

 잠시 이 시편 구절의 배경을 알아봅시다. 시편 전체는 애굽땅을 떠나 덥고 메마른 시내 광야로 여행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리고 있지요. 그들 뒤에는 그들이 노예로 있던 애굽이 있었지만, 음식과 물도 공급되었어요. 사막 생활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빴습니다. 그들은 빠르게 약해지고 용기를 잃어 갔어요. 그들의 마음은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품이 있던 애굽땅으로 다시 향했지요. 이제 그들은 죽게 될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 나아가 하나님께까지 불평하기 시작했어요.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다고 말합니다. 애굽왕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기적적으로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돌봐 주실 것에 대해 의심했어요. 성경은 이러한 믿음 부족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해 주시고자 하던 그 분의 마음을 격동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성경절이 의미하는 바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에 대한 그 분의 목적과 계획에 있어 하나님을 결코 격동해선 안 됩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상의하지 않고 지정된 길로 행성들과 별들 그리고 태양을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단일 천체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를 바꿀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들으세요,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을 격동할 수 있고 그 분께서 여러분의 생애에 하시고자 하는 것에 대한 계획을 바꿀 수 있어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생애에 대한 개인적 선택을 가진 자유로운 도덕 대리인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을 허락하지 않으면 하나님조차 여러분의 생애에 대한 그 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동의가 없으면 여러분을 위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은혜가 기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경이롭지만,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생애에서 죄를 이겨 내도록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 분께서 여러분의 구원에 대한 그 분의 계획을 실행하실 수 있도록 허가해 주어야 합니다. 단순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에 하고자 하시는 일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권능이 있으신 계신 하나님을 격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오래 전 우리의 생애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계획을 거부하고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전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여러분 스스로 한가지 질문을 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전면적으로 협동하여 그 분께서 여러분의 생애에 그 분의 목적을 실행하시도록 허용했다면 여러분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의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이 문제에 대해 슬픈 구절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성인이 되실 때까지 자란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 가셨어요. 그 작은 마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은 얼마나 놀라운 영광이었던가!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스도의 방문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분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고 진리의 기별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 분께서 너무 평범하고 소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분께서 그들의 마을에서 사셨고 마을 목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 분을 거절했어요. 마태복음 13:55~56에서 그들이 하던 말에 주목해 보세요.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 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그들은 그 분으로 인해 불쾌해 했어요. 그렇지만 그 분께서는 그들의 불신 때문에 많은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지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나자렛에서도 이적을 행하고자 하셨어요. 그 분의 친척들과 이웃들은 나자렛에 살았고, 그 분의 어린 시절 놀이친구들 몇몇도 아직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아마 그들 중 일부는 병에 걸리거나 눈이 멀었을 테고 그들 모두는 이 세상의 구세주를 알 필요가 있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만져주고, 고치시며, 죄와 고통의 무게를 덜어주시고자 했지만, 그러실 수 없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 부족으로 예수님을 격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는 그들을 구제하실 수 없었지요.

 얼마나 자주 우리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것의 한계입니다. 그 분께서 나자렛 사람들에게 해 주시기 원하던 것들이 있었던 것과 같이 지금 우리에게 해 주시기 원하시는 놀라운 것들이 있어요. 그 분께서는 모든 문제와 필요를 충족시켜 주실 수 있는 권능이 있으십니다. 그 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의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 분께서는 그 분의 손으로 우주를 잡고 계시지만, 여러분이 자발적이지 않으면 여러분을 위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승리와 행복에 대한 그 분의 소망에 있어 여전히 그 분을 격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방법을 아시나요? 물론, 믿음의 부족이 한가지 방해 요인이지만, 성경은 우리의 기도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분의 뜻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그 밖의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9:1~2의 말씀을 보시죠.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것은 성경을 통틀어 가장 참되고 증명 가능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그들의 죄, 질투, 증오, 의심, 불결에 의해 하나님을 격동하고 있어요. 알려진 죄는 경험이 부진해지면서 그 활동적이고 열 띤 요인을 잃을 때까지 구속하고 속박하는 사슬과도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마지막으로, 생명은 말라 비틀어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설계는 거절되고 무효화되어 버립니다.    

 그러한 죄의 장애물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 분께서는 1세기에 그러셨던 것처럼 20세기에도 여전히 치유하시고 구제하실 수 있어요. 죄의 장애물이 제거될 때 그 분께서 성취하실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 지니라.”

 약 160년 전, 사람은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빨리 여행할 수 없었습니다. 말의 장벽은 인간의 진전을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1830년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사람이 “철마,” 즉 가장 빠른 동물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기관차를 발명하여 말의 장벽을 돌파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그러한 발전이 뒤따르고 급기야 두 형제가 중력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냄으로써 인류를 처음으로 공중을 날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공기가 음속에 근접하면서 튼튼한 항공기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악마와도 같이 음속이라는 장벽이 나타났어요. 그것은 극복할 수 없어 보였지만, 마침내 엔지니어들은 음속의 문제를 해결한 유선형 동체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열의 장벽이 나타나 금속체가 마하 3, 즉 음속의 세 배에 접근할 때 버터처럼 녹아 버리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높은 열에 견디는 새로운 합금이 개발되자 과학자들은 “불가능”이란 것은 단지 그들이 개발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육신이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전능하신 그 분의 팔이 하시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죄의 장벽”이야 말로 여러분과 제 삶에 있어 하나님의 목적을 행하시지 못하도록 하는 마지막 장애물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그 분의 계획에 있어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제한할 것입니까?

 이제 저는 죄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가장 극적인 예들 중 하나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여호수아 7:11~13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군은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그 적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기로 약속하셨기에 그들은 그들의 길목에 있던 작은 성, 즉 아이성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진군했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후방에서 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작은 적 부대에 대항할 힘도 없어 보였어요. 여호수아는 크게 낙담하여 자기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구했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아주 유쾌한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누군가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훔쳐 장막에 숨겨 두었는데 다음 날 그것이 아간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는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 세겔을 가져가 자신의 장막에 숨겼지요. 성경은 23절에서 그들이 그 저주 받은 것들을 숨긴 곳에서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간은 그 죄로 인해 죽음을 당하고, 이스라엘 군은 전진하여 아이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예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권능이 적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권능을 막는 숨겨진 죄악과 고의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죄는 고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승리를 허락 받기 전에 그러한 죄를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늘의 축복은 순종하는 사람 위에만 내립니다. 여기 그러한 말씀의 증거가 있는데 사도행전 5:32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바로 여기 있네요. 성령은 그 분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현대 교회가 그렇게 능력이 부족한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구식이라 하여 십계명을 거부해 왔어요. 신학자, 목사, 전도사들은 하나님께서 친수로 쓰신 위대한 도덕법에 등을 돌리고 공공연하게 그 위반을 조장해 왔습니다. 그 중 일부는 십계명 중 몇 계명의 구속력 있는 의무를 부인했지만, 대부분은 특히 넷째 계명을 팽개쳐 버렸어요. 그 계명은 창조주를 경배 받아야 할 유일한 참 하나님으로 확인해 주는 안식일에 대한 계명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날로 그 분이 명령하시고 친수로 직접 써 주신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지요, 여러분? 이 계명이 뭐라 한다고요?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계명을 지킨다고 공언할 수 있을까요? 제칠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보통 날처럼 일하고 사업하는데 이용되고 있지요. 성경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성령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의 회복, 순종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순종할 정도로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면서 그런 종류의 회복은 영적인 회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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