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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 칼럼
  > 김명호
  > 오만규
  >> 불굴의 삶을 이끄는 생명력의 원천
  >> 왜, 일곱째 날일까?
  >> 제칠일 안식일, 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의 날
  >> 인류 최초의 성소, 안식일
  >> 시간의 성소, 공유와 상생의 천국
  >> 안식일과 십계명의 관계
  >> 안식일 계명과 노동
  >> 주말 휴일과 성일의 기원으로서 제칠일 안식일
  >> 안식일 계명과 생명의 연대 의식
  >> 안식일, 언약의 기념일
  >> 안식일의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되는가?
  >> 안식일과 자유와 ‘오늘’
  >> “안식일을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라”(레위기 19장 30절)
  >> “네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레위기 19장 3절)
  >> “안식일을 준수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을 거룩하게 하라”
  >> “안식일을 준수하여 우상 숭배를 배척하라”
  >> 예수님과 안식일 ①
  >> 예수님과 안식일 ②
  >> 예수님과 안식일 ③
  >>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했거나 다른 날로 변경하셨는가?
  >> 예수님의 구원은 안식일을 무력화시켰는가? 회복시켰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모범을 남겼는가?
  >>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주일로 기념된 일이 있는가?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칼럼  >  오만규  >  안식일 계명과 생명의 연대 의식
 

 

 아인슈타인의 안식일관
 이 교회는 그 명칭에 잘 나타나 있듯이 주간의 제칠일인 토요일을 십계명이 명령하는 진정한 안식일로 지키는 교회다. 일요일 주일은 가톨릭 교회가 임의로 십계명의 안식일을 폐하고 그 대신에 예배일로 결정한 날이기 때문에 진정한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휴학생 신분이었던 필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마땅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요한복음 14장 15절 참조)는 ‘안식일교회’의 가르침에 공감하였다. 그리고 1년 후 고등학교 3학년에 복학한 후에는 토요일에 결석하는 문제로 적지 않은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지만 열성스럽게 안식일에 교회로 출석하면서 안식일을 구별하였다.
 그러나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학교 선생님들과 학우들이 안식일 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 이외에 안식일에 어떤 보편적인 도덕성이나 의미가 있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없었고 이 부분이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느낌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직 고등학교 3학년을 다 마치지 못했던 어느 날 나는 어느 서점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의 <나의 세계관(The world I see it by Albert Einstein)>을 구입하게 되었으며 이 책에서 안식일의 도덕적 의미라고 말할 수있는 아인슈타인 박사의 안식일관을 읽게 되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생명의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언급하면서 “신을 섬기는 것은 생명을 섬기는 것과 동일하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은 유대교의 가르침 속에 가장 독특하고 생동감 있게 살아 있으며 그중에서도 안식일 계명은 유대교의 생명 경외사상을 대표하는 계명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특히 안식일 계명이 안식일에 휴식을 누려야 한다고 지목한 여러 생명체의 목록에 말 못하는 가축까지 포함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생명 연대 의식’의 특별한 본보기로 강조하였다. 그리고 한 지인이 자신에게 “유대인이 취미로 사냥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이말 속에 유대인이 이해하는 안식일 계명의 생명 경외 사상이 잘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안식일 사상의 본질을 생명 경외의 사상으로 이해하는 아인슈타인 박사의 관점은 고3 학생이었던 필자의 마음에 커다란 놀라움과 함께 안식일의 도덕적 의미에 대한 확신을 안겨 주었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으로 안식일 계명을 읽으니 구절구절이 도덕적인 의미가 아닌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안식일 교회’의 비무장 군복무(noncombatancy), 채식 문화, 신앙 양심의 자유, 정교분리 등의 신념이 모두 안식일의 생명 존중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안식일 계명에 나타난 생명 연대의 정신
 아인슈타인 박사가 안식일 계명 중에 ‘생명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애굽기 20장 10절)는 명령이다. 주간의 일곱째 날에 노역에서 벗어나 휴식을 누려야 한다고 지명한 생명체들의 목록 속에 가족의 대표인 “너”와 그 직계 가족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력한 노예들과 사람도 아닌 “네 가축”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12절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녀 종들뿐 아니라 “네 여종의 자식”까지 그리고 신명기 5장 14절에서는 “네 소나 네 나귀”뿐 아니라 “네 모든 가축”까지 일곱째 날에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구절에서 생명과 안식의 햇살이 미치는 사회적 응달의 범위가 “네 여종”에서 “네 여종의 자식”으로 한 단계 더 깊어지고, “네 소와 네 나귀”에서 “네 모든 가축”으로 한 단계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동병상련의 생명 연대 의식이 생명의 가장자리의 더 후미진 곳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안식일 계명의 이 같은 생명연대의 의식은 그 무엇에서보다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마태복음 12장 20절)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에서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안식일 계명 자체는 생명 존중 사상과 생명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이중적인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안식일 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가족 대표들에게 자신의 안식을 위해 일곱째 날에 “너” 혼자만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애굽기 20장 10절)고 명령하고 있지 않다. 너 자신뿐 아니라 네 권한 아래 있는 모든 노역자도 너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일곱째 날에 가족 공동체의 우두머리인 너 혼자만 안식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수하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도 모두“너같이 안식하게”(신명기 5장 14절) 하라는 것이었다.
 한 가정에서 노동과 휴식의 결정권자는 가장이며 가족의 구성원들인 자녀, 노예, 가축, 타국인 등에게는 일하고 쉬는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은 가족의 대표에게 가축을 포함하는 가족의 모든 구성원으로 하여금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여 그들에 대한 노동력의 착취와 생명의 억압을 금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도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고 명령하여 사회적 약자들도 사회적 지배자들이 누리는 안식을 차별 없이 누리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은 각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축복을 추구하게 하는 날일 뿐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안식의 축복을 힘없는 이웃 생명체들도 천부 인권의 차원에서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의 날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취지에서 볼 때 안식일 계명은 인류 최초의 근로 기준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 11월 13일에 한국의 청년 노동 운동가 전태일 씨는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의 모든 고용 주체들을 향하여 근로자들에게 매주 하루의 휴일을 제공할 것 등을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촉구하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 22세의 젊은 생을 마감하였다. 자기 자신이 나이 어리고 무력한 노동자였던 그는 앞서 서울 평화 시장의 봉제 공장에서 값싼 급료에 제대로 휴식할 시간도 없이 일하는 나이 어린 여직공들을 보면서 강력한 ‘생명 연대’의 책임 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최소한 ‘숨 돌릴’ 휴식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동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각 방면으로 수많은 노력을 다기울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물론 안식일을 지키는 많은 사람은 전태일 씨가 선택한 분신자살이라는 노동 운동의 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을 불태운 생명 연대의 정신까지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노동 환경은 전태일 씨 같은 노동 운동가들의 자기희생적인 노력에 힘입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으나 아직도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는 한 주간에 하루의 휴일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많다고 한다. ‘쉼이 있는 삶’에 대한 서민 대중의 갈망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대통령 후보의 선거 구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안식일 신앙은 제칠일에 규칙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끝나는 신앙이 결코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안식일의 종교적인 준수에만 열심을 나타내면서 안식일 신앙의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견디지 못한다.”고 주장했다(이사야 1장 13절 참조).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 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하였는데(58장 6절) 안식일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면에서 같은 주장을 하였다(61장 1, 2절 참조).

 안식년과 희년으로 이어지는 ‘생명 연대의 정신’
 안식일 계명에 강조된 생명 연대의 정신은 안식일의 자매 제도인 안식년과 희년의 제도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생명의 연대 의식을 히브리인들의 공동체에 정착시키기 위해 7일 주기의 안식일 제도에 이어 7년 주기의 안식년과 50년 주기의 희년을 제정하여 특별한 법령으로 안식일 계명이 강조하는 생명 연대의 정신을 지원하고 보완하게 하였다.
 7년 주기의 마지막 해인 안식년을 통해 하나님이 첫 번째로 취한 생명 연대의 조치는 모든 히브리인 채권자들에게 그 동포들의 채무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면제하라.”(신명기 15장 1, 2절 참조)고 선포한 것이었다. ‘생명의 연대’ 차원에서 히브리 사람들 중에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없게 하려는(5절 참조) 조치였다.하나님은 만약 히브리인들이 이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5, 6절 참조).그리고 하나님은 두 번째 조치로 부채 때문에 히브리인의 노예가 된 히브리인들에게 매 안식년에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을 선포하였다(출애굽기 21장 2절). 7일 주기의 안식일에는 6일 동안 노역에 묶여 있던 히브리인 노예가 일곱째 날 하루동안 노역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7년 주기의 안식년에서는 6년 동안 히브리 주인 밑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 노예가 노예 신세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평생을 자유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안식년에 이루어진 세 번째 조치는 “육 년 동안에는 네가 네 땅에 씨를 뿌려 거기서 수확을 거둘 것이지만 일곱째 해는 쉬게 하여 가만둘지니라.”(출애굽기 23장 10, 11절 참조)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일곱째 해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라.”(레위기 25장 4절 참조)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안식년에 파종하지 않고 경작하지 않는 땅과 포도원에서 소출된 곡식과 열매는 “너와 네 남녀 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과 네가축과 네 땅에 있는 모든 들짐승의 식량으로 삼을지니라.”(6, 7절 참조)라고 명하였다. 7일 주기의 안식일에는 생명 연대의 의식이 ‘너, 네 자식, 노예, 가축, 타국인’을 포함하였는데 안식년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2절 참조) 토지와 ‘네땅에 있는 모든 들짐승’(7절 참조)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안식년이 일곱 번 거듭된 다음의 해, 곧 제50주년인 희년에는 히브리 노예들에 대한 전면적인 해방이 이루어졌고 토지 재산의 소유권이 본래의 주인이나 그 상속자에게 반환되었다. 제7월 10일에 나팔을 불어 희년의 시작을 선포할 때 모든 히브리인 거주민들에 대한 자유가 선언됨으로써(9절 참조) 가난 때문에 동포 히브리인에게나 또는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비히브리인에게 노예로 팔렸던 히브리인들이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다(39~43, 47~53절 참조).
 안식년에는 히브리인 노예를 부리고 있던 히브리인이 개인적인 관계에서 히브리인 노예를 해방시켰으나 희년에는 히브리 공동체의 전체적인 책임 아래서 히브리인 노예의 전면적인 해방을 선언했다. 안식년에는 ‘생명의 연대 의식’이 개인적 관계에 제한되었다면 희년에는 그것이 히브리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채 때문에 매각된 토지들을 본래의 소유주에게 반환시키는 조치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해방된 히브리인 노예들에게 경제적 자립 기반을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모든 히브리인에 대한 자유의 선포와 토지 재산 소유권의 원상회복은 사람과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신앙 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토지는 다 내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못한다.”고 금지했으며(23절 참조), 또 이스라엘 자손은 모두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55절)이므로 “희년에 이르러” 히브리인 노예나 그 자녀가 “자유하리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54절 참조). 하나님의 종을 자신의 종으로 부리는 것이나 하나님이 그 종에게 나누어 준 토지를 사유화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A. D. 4세기 이후 기독교 세계는 제칠일 안식일을 폐하고 그 대신에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게 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유감스러운 사실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의 생명 존중과 생명 연대의 정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1, 2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지는 서양 기독교 세계의 무수한 전쟁들과 대살육의 역사는 안식일 신앙의 폐기에 따른 무서운 업보였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주장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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